피타고라스의 철학
피타고라스는 과학, 수학, 우주론, 미학 등 을 하나의 매듭으로 묶어 세계를 오로지 하나의 법칙에 지배되게 정돈된 전체로 입증하려 하였다고 합니다.
음악 이나 화음론
피타고라스는 음향학자였다.
그러나 자신의 저작을 남기지 않아 피타고라스 학파 사람들로 인해 이 이론이 후세에 전해졌다.
피타고라스는 영혼 정화가 음악의 목적설을 주장하며 소리의 협화를 비례로 설명한 것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순정 5도를 반복하는 중첩된 음률을 피타고라스의 음계라고도 합니다.
미론
피타고라스는 조화의 미덕은 신성함과 건강,모든 선들은 마찬가지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수론이나 수학
우주에 대한 수학적이나 미학적인 전망은 피타고라스에 의해 탄생했는데, 만물의 근원이 수라고 주장을 했다.
피타고라스의 학파는 무한 앞에 그리고 한계를 두기 어려운 것들에 앞에서 신성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경계를 정할수 있고 질서를 만들 수 있는 현실에 이해할 수 있는 규칙을 찾으려 하였다.
피타고라스의 생
피타고라스는 6세기 중반에 설립되었다. 기원전 13세기 사모스 섬의 상인인 메네사르코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피타고라스의 부모는 그가 어린 나이에 리라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고, 훈련시키고, 긴 여행을 하도록 그를 훈련시켰다.
그는 밀레토스의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 밑에서 공부했고,
그의 선생님의 주도 하에 해외 이집트로 갔고,
멤피스 사제들로부터 기하학과 천문학을 배우기 위해 나일 해안의 여러 절들을 23년 동안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그 무렵, 이집트를 침략한 페르시아 황제들은 그를 다른 학자들과 함께 바빌론으로 데리고 갔다.
피타고라스는 12년 동안 바빌로니아 점성술사와 작가들로부터 폭넓은 지식을 얻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사모스 섬으로 돌아옵니다.
사모스는 40년 전 그가 아마도 60살이었을 때 처음으로 버려졌습니다.
피타고라스가 돌아왔을 때 사모스 섬은 폴리크라테스 백작의 독재정권 하에 있었다.
기원전 532년. 피타고라스는 그의 조국을 떠나 이탈리아 남부의 크로톤 이라는 마을에 정착했다.
아마도 피타고라스는 이집트와 바빌론에서 공부하는 동안 얻은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에 매우 집착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서 그는 사모스 섬에서 크로톤으로 이주했다.
마침내 그는 크로톤에 피타고라스 학교를 설립했고 많은 젊은이들을 철학자나 정치인으로 키웠다.
크로톤을 포함한 인기 있는 도시의 정치에 관여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회원들과 젊은이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피타고라스 학교는 6번째 생의 마지막에 정치적 세력이 되었다.
게다가, 피타고라스의 생각을 퍼뜨리려는 회원들의 과도한 노력과 피타고라스의 보수적인 정치적 경향은 크로톤 시민들 사이에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시바리스의 군대가 크로톤을 공격할 때,
피타고라스의 한 장군은 상황을 역전시키고 대신 시바리를 점령한다.
그러나 피타고라스 학교의 입학시험에 실망한 한 학생은 피타고라스의 추종자들이 승리 후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하여 약탈을 독점했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있어요.
이에 격분하여 크로톤 시민들은 학교를 공격하여 피타고라스를 보호하려고 하는 38명의 제자들을 살해하였다.
피타고라스는 크로톤 북쪽 메타폰툼으로 도망갔지만 그곳에서 피타고라스는 살해되었다.
피타고라스의 죽음 이후, 그의 제자들은 피타고라스의 생각을 더 발전시키고 퍼뜨리려고 노력했다.
이 시기부터 피타고라스와 관련된 많은 일화들과 전설들이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 전기
피타고라스의 삶에 대한 정확한 사실은 매우 드물고,
피타고라스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는 꽤 최신이고 믿기 어렵기 때문에,
피타고라스의 삶에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단지 모호한 윤곽일 뿐입니다.
그 시대의 작가들에 의해 남겨진 자료도 너무 부족했고, 피타고라스의 학교를 둘러싼 미스터리 때문에,
허구적인 이야기들은 종종 사실을 대체하기도 했다.
피타고라스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남긴 신플라톤 작가들은 신과 관련이 있거나 신에 대한 증거로 간주되었다는
사실조차도 이러한 허구적인 구술적 해석을 성급하게 받아들였다. 이것은 많은 신화를 낳았다.
예를 들어, 아폴로가 그의 아버지인지, 그의 초인적인 지능으로 피타고라스가 꽃을 피웠는지,
그의 넓은 다리는 금빛 화살을 가지고 그에게 날아갔는지, 아니면 동시에 서로 다른 곳, 다른 장소에 나타났는지.
그의 삶은 종종 제노파인, 헤라크리토스, 헤로도투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소크라테스의
자료로 자세히 조사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피타고라스 학교에 대한 독립적인 글을 남겼는데, 불행하게도 그것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대신, 아리스토텔레스, 디케라코스, 아리스토텔레스 세노스, 헤라클리데스의 폰티코스와
같은 주제에 대한 다른 글들을 남겼다.
너무 늦게 도착한 이 작가들은 전설이나 의견을 추가하지 않았고,
이것은 포르피와 임암블리쿠스의 주요 원천이 되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그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고려하려고 노력했지만,
그에 대한 모든 가능한 이야기들이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피타고라스가 활동했던 지역은 극단적으로 매우 넓고 방대하다.
글을 쓰며, 인상깊은 사상이 있었는데
피타고라스의 영혼희 윤회사상을 확인해 보면 그에 따르면 혼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불멸하는 실체라 몸이 소멸할때 혼은 다른 짐승의 몸속으로 들어간다고 하는데,
이를 혼의 전이설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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